시작은 1년짜리 어학연수였다. 정확히 말해 3개월짜리 3개의 Term과 2주짜리 Term break 2개로 이루어진 10개월의 어학연수 계획이었다. 유창한 영어능력을 장착하고 돌아오겠다던 포부를 앉고 떠난 유학길이었다.
The most improved Student
호주에서의 둘째날, 첫 등교를 하는 날이었다. 아직도 기억이 어렴풋이 남아있다. 학창시절에, 초중고 모두 같은 학교를 다녔음에도 같이 등교했던 기억이 거의 없는데 이땐 형과 함께 등교를 했다. 버스 한번, 기차 한번, 도보로 20분정도 총 한 시간이상 걸리는 등굣길이었다. 지금 생각해보면 그 먼거리를 어떻게 매일 다녔는지 모르겠다.
레벨테스트를 하고 AYA (Academic Year Abroad(?)) course에 들어가게 됐다. 불행인지 다행인지 한국인이 9명 대만인이 2명인 class였다. Course 이름에서도 느껴지다시피 academic 한 class였다. 난 일상대화도 되지 않는데 영어로 그런 딱딱한 (사실 비교할 수 있는 게 없었기에 내 느낌일뿐이다.) 수업을 들었어야했다. 아직도 기억이 난다. 첫 수업에 다들 영어로 인사를 하는데 그것조차 할 수 없던 나의 모습. 수업중간에 숙제를 내줬을텐데 무엇을 해야하는지 조차 몰라서 수업이 끝나고난 뒤 항상 한국인에게 살짝 물어보던 나의 모습. 어떤 그룹에서 자신이 열등한 존재라는 걸 느낀다는건 썩 유쾌하진 않았다. 수업시간에 질문을 받고 대답을 못해도 별거 아니라는 듯이 웃어 넘기곤 했지만 스스로에게 매우 화가나는 일이었다. 수업시간엔 뭔가를 보여줄 수 없으니 숙제라도 열심히 해야했다. 그렇게 하루하루 꾸역꾸역 따라가다보니 3개월이 훌쩍 지나있었고 상장을 하나받게 됐는데 그게 The most improved student 상이었다. 가장 성적상승이 큰 학생에게 주는 상장이라고 했다. 시작할 때 꼴등이었을테니 줄만한 상이 이것밖에 없었나보다 라고 민망한듯 말하긴 했지만 내심 뿌듯했다. 그것이 호주와서 처음 맛본 성취감이었다.
번호따기(?)
내 기억이 틀리지 않다면 그 때가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여자에게 사심을 가지고 번호를 물어본 일이었던 것 같다. 전역한 지 2주만에 어학연수를 오게됐고 나의 열정은 어학에만 국한 돼있지 않았다. 배운 영어를 실전에서 실력발휘를 하고 싶었다 라고 하기엔 좀 궁색한 변명같고 쉬는시간마다 보이던 그 일본 여자애는 이뻤다.
그냥 말을 걸고 친구가 되면 될텐데 뭔가 번호를 따야한다는 생각이 있었던 것 같다. 나름 철저하게 준비를 했다. 많은 시나리오를 준비해서 영작을 했고 연습을 한뒤 다가간다. 근데 정작 인사를 하고나니 따 까먹어버렸다. 그냥 내가 했던 말은 폰번호 받을 수 있는지 물어본게 다였다. 그 아이는 상냥하게 웃으며 전혀 문제가 없다는 표정으로 번호를 적어줬다.
그 아이는 늘 친절했고 늘 이뻤다. 하지만 그게 끝이었던 것 같다. 서로의 영어능력상 진지한 대화는 오갈 수 없었고 여자로서의 관심은 그렇게 사라졌다. 그냥 그렇게 외국인 친구들중 한명이 됐다.
어쨌건 나의 모국어로도 해본적이 없던 번호따기를 그래도 영어로 해봤다는 것에 큰 의의를 둔다.
3개월만에 끝난 어학연수
첫번째 Term이 끝이나고 다음 Term이 시작되기전 어학교 Dean 으로부터 이야기를 하나 듣게된다. 물론 난 무슨 이야기인지 제대로 알아들을 수가 없었기에 한국인 중에서 가장 영어를 잘하던 누나가 통역을 해줬다. 학교의 재정문제로 내가 등록을 했었던 course가 사라진다는 얘기였다. 같은 course에 있던 학생들은 개인적으로 Dean 과 대화를 나눠야했다. 내가 듣기로 거의 다 다른 language course로 이동을 했다.
내 차례였다. 무슨 생각이 있었는지 모르겠다. 원래부터 계획이 있었던 걸까. 대학을 다니고 싶다고 했다. Dean도 알았고 나도 알았다. Language course도 따라가지 못하는 내 영어실력으로 어떻게 대학에서 공부를 하겠는가. 학교 내 자체 IELTS 시험 같은 걸 보라고 했다. 거기에서 충분한 점수가 나오면 대학에 갈 수 있는 과정에 넣어주겠다고 했다. 읽기와 쓰기는 한국에서도 영어를 오랫동안 공부를 했으니 가능성이 썩 없다고는 생각 안했지만 듣기와 말하기는 설명할 가치도 없는 수준이었다. 아무튼 시험을 치라고 하니 시험을 쳤다.
결과는 받질 못했으나 난 한국에서 고등학교를 졸업했으니 호주 대학에 가기전 year12 과정 (고3 과정)을 받고나면 대학에 들어갈 수 있다고 했다. 아마 시험 결과가 커트라인에 미치지 못했을 것이다. 하지만 학교에서도 다른 방법이 없었을 것이다. 그렇게 어학연수가 3개월만에 끝이났다.
이때까지만 하더라도 대학 입학을 일찍 할 수 있다는 사실이 좋은 줄로만 알았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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